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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tos by Seungwon Yang

go.b.o. 

 
Gyeonggi Arts Center, project gallery
2017
 
direct+choreography           wooyeon chun 
performer+choreography    dongil kim, hyojung eun 
sound                                  wooyeon chun 
light                                     wooyeon chun

평면과 공간을 시간적으로 구성하기 

 

고보는 공연에서 사용하는 조명기 앞에 부착하여 빛의 모양을 만드는 렌즈용 틀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조명의 빛이 깔끔한 사각형의 형태로 떨어지게 만들기 위해서 가운데가 사각형으로 뚫린 고보를 렌즈 앞에 부착한다. 전시의 제목인 고보는 일차적으로 이 장치에서 가져왔다. 사물의 윤곽을 만들거나 사라지게 하는 틀, 빛의 모양을 결정하는 틀의 기능을 하는 고보는 빛을 매개로 하여 만들어진 이미지인 영상이라는 매체와 연결 가능하다. 영상이 빛의 결과라고 한다면 그 형태를 결정하는 고보는 작가의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라고 볼 수 있다. 고보는 또한 한자로 ‘외로운 걸음’이라는 중의적인 의미를 가진다. 한 사람이 혼자 걷고 있다는 상황의 묘사는 전시 전반에 깔린 정서로 작용한다. 흑백의 드로잉으로 만든 세 개의 신작 영상 작업들과 영상들 사이를 흐르는 별도의 사운드 설치, 흑백의 프린트를 잘라 만든 평면작업과 역시 흑백인 애니메이션 드로잉. 이렇게 색채가 배제된 채 흑과 백, 빛과 어둠의 변주로만 구성된 전시의 풍경이 전시장 곳곳에 나지막이 깔린 ‘외로운 걸음’의 정서를 구현한다. 그러나 이 ‘외로운 걸음’이 개인의 감정에서 발현한 서정적인 마음의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작가가 몇 년 전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이후 직장생활을 비롯하여 사회 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개인과 집단사이의 갈등, 타인과의 속도 차이가 반영되지 않는 획일적인 문화 등의 경험에 대한 생각의 반영이다. 옳고 그름을 판별할 충분한 시간도 주어지지 않고, 문제에 대한 입장을 선택할 결정권도 없이 자신도 모르게 낯선 상황에 휘말리게 되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 자각이 이 정서의 기반이다. 사회와 자신이 멀어지는 것 같다고 느끼는 그 순간들에 마치 혼자 걷고 있는 것 같다는 감각이 이 ‘외로운 걸음’이라는 제목에 깔려있다. 물론, 이 같은 분리의 감각은 비단 작가만이 느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걸음은 신호등 소리의 리듬을 따른다. 어두운 전시장에 들어서면 흑백 영상 작업들 만큼이나 공간 전체를 감싸고 있는 소리가 관객의 감각을 자극한다. 이 소리는 마치 건널목에서 들려오는, 시각 장애인을 위해 설치한 경보음처럼 특정 리듬으로 울린다. 메트로놈의 정박자로 딸깍 거리는 소리도 함께 깔려있다. 이 소리는 영상에 등장하는 움직임과 때로 결합하고 때로 분리하면서 엇박의 리듬을 형성한다. 소리와 영상 간의 결합과 분리는 영상 내부의 이미지들 속에서도 작동하고 있다. <Ignis Fatuus (도깨비 불)>은 어두운 공간에서 작은 광원들이 움직이고 무용수 들이 반복적으로 회전하는 장면이 빛을 받아 드러난다. 손전등 같은 작고 둥근 광원의 움직임과 빛의 밝기의 변화를 통해 흑백의 장면이지만 원근과 공간감이 형성되고, 그 빛을 받은 무용수 신체의 일부가 화면에 등장했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여기서 빛의 움직임이나 사람의 움직임은 동일하게 일시적이며 사라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빛과 사람의 회전이 마치 행성계의 별들의 움직임처럼 특정한 리듬의 궤도에 의해 접속했다 멀어지는 운동으로 표현된다. <왔다 갔다> 역시 반복운동으로 구성된 영상이다. 메트로놈의 추의 움직임처럼 바닥에 앉은 자세에서 몸을 좌우로 굴러서 움직이는 남, 녀 무용수의 움직임이 보인다. 두 사람을 각기 촬영한 것을 하나의 영상으로 겹치면서 같은 동작이 약간의 시차에 의해 접합하고 분리되는 순간들이 반복된다. 겹쳐진 이미지로 인해 인물들은 강한 존재감을 갖고 드러나기 보다는 환영 또는 유령적인 상태를 연상하게 하고 초창기 영화의 이미지들을 떠올리게 한다. <흔들기>는 작가의 드로잉을 모아 구성한 2 채널의 애니메이션 영상작업이다. 하나는 세로로 다른 하나는 가로로 겹쳐 부착하여 두 개의 모니터가 마치 조각과 같은 형태를 만든다. 목판화의 필치처럼 검은 색의 거친 선들이 흔들리는 풍경과 걸음을 구현한다.  

사진의 꼴라주로 만든 <흰 그림자>는 평면 작업이지만 앞서의 영상 작업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편집이 반영되어 있다. 둥그런 조명이 만드는 빛의 부분은 검은색 또는 회색의 그라데이션으로 채워져있고 그 외의 배경은 흰색으로 반전되어 있다. 각각의 사진 프린트들을 잘라서 이어 붙인 이 작업은 각기 다른 순간을 기록한 것이 하나의 화면이 연결되어 마치 필름을 이어 붙였을 때처럼 하나의 시간의 덩어리를 만든다. 매체는 서로 다르지만 영상에서 표현한 시차와 접합, 빛의 작용 등의 주제와 형식이 연결되어 있다는 측면에서 흥미로운 시도이기도 하다.

 

전우연 작가는 <고보>를 통해 본격적으로 '전시장' 설치를 시도한다. 회화와 판화를 전공했으나 무대미술로 유학을 가면서 작가가 작업을 보이는 공간은 주로 퍼포먼스와 연결되어 이루어져 왔다. '퍼포먼스적 콘서트', '연극적 퍼포먼스' '설치적 퍼포먼스'라는 형식으로 작가가 이름을 붙인 일련의 작업들은 '-적인' 즉, 서로 다른 접근들과 장르의 사이에 놓인 형식을 띄었다. 이 사이의 특징을 풀어서 설명하자면 시각적인 표현이 강조되는 시간 기반의 작업들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퍼포먼스, 공연 외에도 그룹전과 기획전에 참여하면서 만든 작업들의 경우 관객이 직접 틈을 벌리고 안을 들여다보게 하거나 (<The Comfort Station>), 직접 건반을 두드려 소리대신 단어가 들리게 하거나(<Spiel Mein Pianist>), 실을 잣는 물레와 같은 장치를 돌리게 하는 등, 관객의 물리적인 개입을 필요로 하는 장치를 만들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전시 <고보>는 작가에게 있어 기존 작업과는 다른 두 가지 시도의 기회가 되는데, 첫째 기존의 관객, 퍼포머, 연주자가 참여하여 눈 앞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을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영상과 평면 작업에서 보이는 움직임을 다루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두 번째 처음으로 전시 공간 전체를 연출하여 전시 공간을 하나의 통합적인 경험의 구조로 만든다. 작업의 장치를 직접 작동시켜 움직이지는 않지만, 소리와 영상을 통해 전시의 관람에서 사건적 경험을 만들어낸다. 영상에서의 시간의 구성방식을 <흰 그림자>의 퍼포먼스에서 구현한 것처럼, 공연에서의 시간과 장면 구성의 경험이 전시의 연출에 반영되는 전환의 과정이 드러난다.  

 

김해주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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